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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견, 이 세상 개 아니다" 은하계 본뜬 반려견 염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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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작성일21-02-18 17:37 조회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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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10218130110140


마치 은하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반려견의 모습에 동물애호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주인은 “이 세상 개가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16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우주를 본뜬 디자인으로 반려견을 염색시킨 미국 애견관리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사는 애견관리사 시에라 슌(22)이 반려견 ‘에코’를 데리고 나가면 행인 반응은 한결같다. 모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반려견을 바라본다. 어떤 이들은 슌에게 직접 반려견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녀는 “개가 원래 이런 색이냐고들 묻는다. 그러면 나는 ‘갤럭시 데인’이라는 우주견이라고 대답한다”고 밝혔다.

‘갤럭시 데인’은 은하를 뜻하는 단어 갤럭시와 그레이트 데인이라는 품종명을 합쳐 애견관리사 본인이 지어낸 말이다. 말 그대로 이 세상 개가 아닌 새로운 품종, 우주견이라는 의미로 애견관리사의 자부심이 드러난다.

애견관리사는 초대형 그레이트 데인 품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심어주고 싶어 반려견을 염색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게 60㎏, 높이 90㎝의 대형견이 공공장소에 등장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하거나 긴장한다. 몸집이 크다 보니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반려견이 위축되는 등 나쁜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염색을 하고 나니 사람들도 반려견에게 편하게 다가오고, 주변 분위기도 밝아지더라고 덧붙였다.



반려견에게 염색을 시키는 것이 과연 개에게 괜찮은건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저렇게 해도 건강상에 문제는 없는건지. 관종짓을 개에게 실행했네요

눈에 가까운 피부까지 꼼꼼히도 염색했네요.

알러지 반응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강아지는 아파도 말도 못하고.

저건 진짜 미친짓인게...탈색이 사람 두피도 겁나 아프게 만드는데 말못하는 개한테;;;;
전신에 탈색약 발라놓고 1시간 버티라고 하면 못버틸거면서.... 강아지만 불쌍하네

https://news.v.daum.net/v/20200120134034146

평소에 맥주 거품이 많이 나게 해서 혼자 마시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겠군요... 근데 대부분 라거를 먹으니 별상관없을거 같아요 라거는 시원해야 제맛!! 동남아식처럼 얼음 넣어먹어도 괜찮은거 같아요

에일의 경우 애초에 차갑게 마시는 게 아니라서... 밀맥도 너무 차면 맛이 팍 죽더라구요

언젠가 봤는데 양주를, 특히 꼬냑을 언더락으로 마시는 것은 이상한 행위라고 하더군요.
손의 온기로 살살 데워가면서 마셔야 한다고...
사실 확인은 해보지 않았읍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105155700005


https://www.yna.co.kr/view/AKR2021010515950000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연작이었습니다.


https://youtu.be/vH6jnnavW5Y


https://youtu.be/6p_YDgL7skQ


http://kimtschang-yeul.jeju.go.kr/cnt/cntManagerView.do?cntNo=10&menuNo=0102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ntity/m02613px?hl=en-GB 어렸을때 보고 신기했었는데 별세하셨다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렸을적 가장 재밌게 봤던 미술책이 한국근현대화가들 다룬 책이었어요. 작은 아이에게도 이중섭과 김창열의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181101153709475

쇄미록 저자 오희문(1539∼1601)은 학문은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대부였다. 그는 임진년 이전인 신미년, 즉 1591년 11월 27일 한양을 떠나 경기도 용인에 사는 처남 서당에서 머문 이야기를 시작으로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간 일기를 썼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남도로 발걸음을 옮긴 오희문은 또 다른 처남이 수령으로 있는 전라도 장수현에 갔다가 1592년 2월 충청도 영동과 황간에서 외가 친척을 만나고 다시 장수로 돌아온다.

이어 그해 3월에 다시 길을 떠나 전라도 각지를 두루 순례하고 4월 13일 장수에 도착한다. 그런데 며칠 뒤부터 왜선 수백 척이 부산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오희문은 각종 풍문과 문서를 글로 남기는 작업에 돌입했다.



조선시대가 학문에 몰빵하는 분위기였던 덕인지 온갖 기록이 많기도 하군요. 사실 또 그 기록떄문에 재평가 받는 것도 많고(..) 그래서..
그러다보니 역으로 과대평가가 심해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이게 조선시대 켜라위키인가 하는 그거냐

기록덕후의 나라죠.

화성성역의궤는 지금 봐도 토나오게 방대하고 자세하죠.

조선은 너무 많은 기록을 남긴 나머지 까이기도 많이 까이지만 그래도 그 기록 정신은 본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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